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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 케인 법률사무소

법률 칼럼

차용미술은 저작권 침해일까? 카리우 대 프린스

저작권은 창작자에게 자신의 창작물을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권리를 준다. 그 중 하나가 작품을 변형한 파생물(derivative work)의 창작이다. 변형은 원작자의 권리이기 때문에 원작자가 있는 창작물을 변형하려면 원작자의 허락을 구해야한다. 하지만 원작물을 사용하는 방식이 “공정이용 (fair use)”에 해당하면 허락 없이 작품을 변형하더라도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타인의 작품을 차용하여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은 과연 저작권 소송으로부터 안전지대에 있는 것일까?

리처드 프린스는 다른 작가의 작품을 차용해 콜라쥬 등 여러 기법으로 원작을 변형하는 리포토그래피 (re-photography)로 유명한 미국 작가다. 2007년 프린스는 리포토그래피 방식으로 제작한 여러 작품을 전시하는데 이 중에는 사진가 패트릭 카리우(Cariou)의 작품을 차용한 Canal Zone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원작인 카리우의 작품은 그가 6년 간 자메이카에서 지내며 라스터패리안(Rastafarian)의 삶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 예스 라스타(Yes Rasta)에 담긴 작품들이었다. 프린스는 이 중 수개의 작품을 이용하여 콜라쥬 등의 형식으로 Canal Zone이라는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다. 대표적인 작품은 숲에 서 있는 라스터패리안 남성을 찍은 카리우의 사진을 기반으로 파란색 종이를 붙이고 남성의 손에 전자기타를 들려 놓은 모습이다. 

프린스는 이 과정에서 카리우의 허락을 전혀 구하지 않았고, 2008년, 카리우는 저작권 침해로 프린스와 가고시안 갤러리 등에 소송을 건다. 1심은 카리우의 승리였다. 프린스가 사용한 원작물의 양과 그 내용을 볼 때 공정 이용(fair use)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프린스의 작품을 카리우 작품에 대한 파생물로 본 것이다. 2심인 연방항소법원에서 프린스는 자신이 카리우의 작품을 변용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 했음을 밝혔고 법원은 이를 주시했다. 

2심은 공정이용 근거가 될 수 있는 네 가지 이유를 밝혔다. 1)상업적 용도인지 비영리 교육 목적인지 여부를 포함한 사용 목적 및 성격, 2)저작물의 본질, 3)저작물 전체와 관련하여 사용된 부분의 양과 상당성, 4)원작품의 시장 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그것이다. 2심은 첫 번째 요건이 공정이용을 판단하는 핵심이라고 밝히며 프린스의 작품이 변용적(transformative)인지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법원은 풍자와 패러디와 같은 공정 이용에 해당하는 창작물은 원 저작물에 대한 언급을 하지만 이것이 변용 작품이 공정이용을 인정받기 위한 요건은 아니라고 한다. 또한 저작권법에 공정이용의 사유로 명시된 비판, 뉴스 보도, 교육 등의 목적이 아니어도 공정이용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즉 공정이용을 인정받으려면 새로운 창작물이 “새 표현, 뜻, 메시지”를 담을 수 있을 만큼 변형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카리우의 작품은 자메이카의 라스타패리안과 그 주변 환경의 아름다움,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표현했지만 프린스는 이를 표현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프린스는 라스타패리안이 어떤 사람들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하며 자신은 사진에 나타난 사람들의 스타일과 구성에 매료되었다고 했다. 또한 자신의 의도는 원작을 완전히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프린스의 작품은 카리우의 사진에 비해 상당히 크며, 흑백인 카리우의 사진에 비해 프린스의 작품은 콜라쥬 기법으로 캔버스 위에 파란색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프린스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도발적인 느낌은 카리우의 작품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앤디워홀재단이 제출한 의견서는 작품의 의미는 표면적으로 봤을 때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미술사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들의 관점을 고려해야한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2심은 합리적 관찰자의 시점에서 볼 때 프린스의 작품은 변용적이며 이에 근거하면 30개 작품 중 25개가 공정이용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새 표현, 뜻, 메시지”에 무게를 둔 이번 판결은 변용예술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데에 한계를 보여준다. 법리 해석에 주관이 많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변용작품이 공정이용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객관적 기준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차용한 예술이 변용예술로 인정받을지 아니면 단순한 파생작일지에 관해서는 아직도 단박에 명쾌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한국일보 칼럼 바로가기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181029/1211452

Hayoon Kane